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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반도: 보스니아 전쟁을 기억하며. 전쟁 20년 후.

각 붉은색 의자는 20년전 사라예보 전쟁 중 희생된 사람들을 의미한다. 거리 전체가 붉은색 의자들로 가득 메워졌지만, 몇몇의 의자 위에 놓여진 꽃을 제외하곤 모든 의자들을 비여진 채 였다. 이 의자에 앉을 수 있었던 11,541명의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지속되었던 사라예보 공습을 기념하는 의미로 2012년 4월 6일 수 천명의 사람들이 사라예보 중심가를 따라 길게 놓여진 이 놀라운 행사에 참가하였다. (기념식 관련 사진들 1, 2, 3).

보스니아 전쟁  발발 20주년을 맞이하여, 사라예보 중심가에 빨강색 의자들을 전시하였다. 11,541개의 빨강색 의자들을 1992년-1995년 사라예보 폭격동안 희생된 11,541명의 사라예보인들을 상징한다. Photo by SULEJMAN OMERBASIC, copyright © Demotix (04/06/12)

1992년부터 1995년 동안 일어난 보스니아 전쟁 20주념을 기념하는 행사로 사라예보 중심가에 붉은색 의자들이 진열되었다. 11541명의 사라예보인들의 죽음을 기념하는 의미로 동일한 개수의 붉은색 의자가 놓여졌다. 사진작가 SULEJMAN OMERBASIC, 저작권t © 데모틱스 (04/06/12)

이날의 슬픈 기념식을 기리기위해 온라인상에서도 많은 이들이 1990년대 보스니아에서 일어난 일들의 의미를 기역하며, 그에 관련된 사진들과 글들을 남겼다. (관련 사진들과 글, 1, 2, 3, 4, 5).

4월 5일, 보스니안 보도 사진가이자 사라예보 폭격의 생존자인 다미르 사골 (Damir Šagolj)은 그의 전시 중의 기억과 사진들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다미르 사골은 2011년 10월 “헤이그 힐튼” (the Hague Hilton)으로 잘 알려진 헤이그 전쟁범죄자 감금시설을 방문 후 매우 인상적인 보도 사진을 올렸다.):

[...] 1992년과 1995년사이의 찍은 사진들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아요. 사진 많이 찍었죠. 대부분 죽은사람들, 파괴의 사진들이었요.살아있는 생명이 담긴 사진들은 몇 장 없어요. 그 후,학살이 멈추는 가 싶더니, 바로 1995년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죠. 그리고, 나는 내 모든 사진들을 버렸어요. 그 사진들을 더 이상 소장하고 싶지 않았어요.

현명한 결정은 아니었을듯 싶지만, 다 털어버리고 앞만 보고 가고 싶어던 것이 그 당시 내 심정이었요.

내 기억에서 중간중간 끊긴 부분을 상상으로 메꿔보고 그 틈을 통해 사람의 생명이 그저 숫자로만 표기되기 전 시절이 어떠했을 가를 그려보는 것. 그게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전부에요. 죽은 이들의 몸에서 손톱과 털이 자라는 것 마냥, 폐허 주변에 잡초만 자라는 것을 보면 그들을 상기시켜요.

나의 모든 사진들을 브라조바(Vrazova) 거리에 있던 내 이전 부대안의 한 방안에 놓아두었죠. 매일 그 건물을 지났어요. 그리고 한가지 일, 내가 해야만 했었던 것은 수년동안 가지고 있었던 열쇠로 방에 들어가 내 필름들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었죠. 그렇지만, 안했어요. 그 후, 한 부자가 그 건물을 샀고 내 기록들은 전부 쓰레기 통에 버려졌어요. 내가 바라던 바였죠.

내가 했던 일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봤자, 아무도 이해를 못했죠. 그러나 어느 시점이 지나자 모든 것이 완전히 다시 이해가 되더라고요.

얼마 안되서, 모든것이 아주 추상적이 되었어요. 얼굴들은 희미해져서 형태로만 남아있고, 이름들은 숫자가 되어버렸고, 생명은 뼈만 남고 없어져버렸죠. 나는 더 이상 내 기억을 믿지 않아요. 왜냐먄 내 기억은 혼돈스럽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강하고 또렷한 판단을 갖고 있는 외부 사람들이 사라예보에 들여오는게 중요해요. 요즘 이런 사람들이 중요한 기념식을 가지러 사라예보로 와요. 물론 992 -95년도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있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정확히 알고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겠지만요.

그 몇몇사람들 없이는, 역사는 사람들을 학살했던 이들에 의해 쓰여졌을거에요.

고마워요.

사라예보 2012: 전쟁보도기자들과 사라예보 친구들의 만남이란 제목의 페이스북 페이지는 기자들의 재회를 주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벤트 일정과 사진들 그리고 이 이벤트에 참석한 몇몇의 기자들의 메모가 여기에 게시되었다. 언론인이자 사진가이며 Centropa.org의 디렉터인 에드워드 세로타(Edward Serotta)는 이렇게 적었다:

[...] 지난 주는 꽤나 감정이 격정적이었던 시간이었다. 마치 전류를 손에 쥐고 있었던것 같았던. 그리고 그 전류를 손에서 놓자마자, 모든 것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이 느껴졌다. 내가 존경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20년전에 일어났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인생을 바쳤던 그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 당시 우리 모두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 행사를 위해 사라예보에 온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모두). 그 목적은 증인이 되는 것. 소위 말하는 문명화 된 세계가 어떻게 속으로는 스스로 갉아먹는 짓을 하고 있는지를 사진으로, 기록으로, 문서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위험을 무릅썼고, 아주 극적이고 격정적인 삶을 살았다.[...]

참사, 용기있는 행동, 대단한 이야기들, 소소한 이야기들을 문서화하기 위한 우리의 모든 노력들과 헌신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그러나 2012년 4월의 한 대단히 중요한 주말에 우리는 모여서 우리가 무엇을 공유했으며, 보도하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열악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최선을 다해 다른 이들을 도우려 했었는지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보도기자인 개리 나이트(Gary Knight)도 그의 메모를 남겼다:

보스톤 내 작업식에 앉아서 내 생의 가장 감동적인었던 경험들 중의 하나였던 사라예보에서의 지난 4일을 되돌아본다. 한 도시와의 씁슬하면서도 달았던 포옹과 폭격의 절대적 절망의 시기동안 겪었던 수 많은 절체절명의 경험들을 나눴던 소중한 친구들.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던 것 만큼이나, 도시를 떠나면서 어떻게 평화가 이렇게도 잘못 되어졌는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보스니아는 데이튼(Dayton)이 주었던 평화 보다 더 나은 평화를 받을 만하다. 보스니아 전쟁 종결 후, 나는 멀리 그리고 널리 여행을 해왔지만 이렇게 절대적으로 우울한 곳으로는 거의 가지 않았다. 보스니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직 많이 있다………..

2005년부터 사라예보를 사진으로 기록해 온 한 현지인 젠카 프레겔(Zdenka Pregelj) (@CountessBezuhov)는 닉 로버츠슨의 CNN보도에 이 언론인 모임에 대해 적었다:

나는 굉장히 감동했어요. 그 당시, 나는 사라예보의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었고 닉(Nic)과 크리스(Chris)를 만나고 밤낮으로 만나고 있었죠. 고마워요 닉, 20년 후 다시 이곳에 돌아와 주어서.

A Bosnian woman, Berina Hodzic, lays a flower on one of the red chairs that were installed along Sarajevo's main street to mark the 20th anniversary of the start of the Bosnian War. Photo by SULEJMAN OMERBASIC, copyright © Demotix (04/06/12).

보스니아 전쟁 20주념을 기념해 사라예보 거리에 놓인 붉은 의자에 한 보스니아 여성이 꽃을 헌화하고 있다. 사진작가 SULEJMAN OMERBASIC, 저작권 © 데모틱스 (04/06/12).

지난 몇 주간 YakimaGulagLiteraryGazettSarajevo Seyahatname 는 보스니아 전쟁 20주년에 대한 블로그와 미디아에 관련 링크를 게시해왔다. 후자는 한 텀블러 블로그인 ‘전쟁 사진들'에 기재되었던 제임스 메이슨(James Mason)이 1992년도에 사라예보의 쓰레기 수거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라예보 폭격의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 작품링크를 게시했다. 그 작품은 한 노트와 함께 기재되었다:

사라예보에서 쓰레기 수거인이 되기란 아마 최전방 군인이 되는것 만큼이나 위험했었을 것이다. 많은 쓰레기 수거인들은 그들이 일하고 있는 동안 저격병에 총살당했거나 포격당하였다. 쓰레기 수거인들 없었다면, 아마도 이 도시는 오물과 질병이 난무했던 중세시대처럼 되버렸을 것이다.

한 사라예보 온라인 뉴스 e-novine.come은 이 기념식에 대한 기사를 [sr]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제임스 메이슨의 사진을 사용하였다. 기사링크와 몇몇의 기념식관련 기사들은 벨그라데(Belgrade)의 Pedja Popovic가 제공한 것이다. (벨그라데에서 Žene u crnom(흑인여성)에 의해 진행된 기념대회 관련 기사도 이 안에 포함되어 있다) 세르비아 정부가 4월 6일 보스니아 세르비아 전쟁 발발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BalkanInsight의 보도에 Popovic은 이러한 댓글을 남겼다:

모든 세르비아 미디어가 이 슬픈 기념일을 못 본체하는 것은 아니군요. [...]

1993년 제임스 메이슨은 빵 배급을 받으려는 인파를 뒷배경으로 하여 약간의 빵을 들고있는 한 소녀의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에 대한 설명은 여기에있다:

빵배급
사라예보

이 소녀는 방금 막 그녀의 가족의 위한 빵 배급을 받았어요. 그리고 우연히 11살 정도의 소년을 만났죠. 그 소년은 나에게 도시를 안내해 주며, 어느 곳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인지 보여주었어요. 그 소녀는 그 소년의 학교 친구였죠 그리고 그 소년을 보고 반가워 했어요. 사라예보의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전쟁에 익숙해져버렸는지 놀랐웠어요.

독자 lalos는 이 사진에 대해 e-novine.com 댓글란에 코멘트를 [sr] 남겼다:

Rasplaka me ona slika sa devojčicom koja je puna sreće jer drži nekoliko vekni hleba u naručju.

Prokleti ratovi i oni koji su bombardovali Sarajevo.

적은 양의 빵을 받고서 행복해하는 이 소녀의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네요.

저는 전쟁과 사라예보를 폭격한 이들을 저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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